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화도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 (문단 편집) == 사건 진행 과정 == 아래는 군 당국의 수사 결과 발표에 의한 사건 진행 과정이다. [[2011년]] [[7월 4일]] 오전 7시 30분, 피의자 김민찬 해병(상병)은 사건 이틀 전 해안초소 경계근무 중 편의점에서 소주 2병을 구입해 창고에 몰래 숨겨둔 것 중 한 병을 마셨다. 오전 10시 30분, 김민찬 해병은 잠이 깨서 나온 정준혁 해병([[이병]])과 창고에서 만나 대화하면서 "권승혁 해병([[일병]])[* 여담으로 [[나인뮤지스]] [[박은지(1988)|은지]]의 외사촌동생이라고 한다.]을 죽이고 싶다"고 말하였다. 이에 정준혁 해병은 처음에는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렸으나, 잠시 후 "소초원들을 다 죽이고 탈영하자"고 제안하였다. 이들은 "지금 죽이자"면서 함께 창고 밖으로 나왔다. 오전 11시 20~35분 경, 김민찬 해병은 상황실에서 [[상황병]]인 L 해병(상병)과 대화를 나누며 기회를 엿보다가 근무자들이 상황실을 비운 틈을 타서 상황실 내 총기보관함과 간이 탄약고에서 [[K2 소총]] 1정 그리고 (실탄 75발과 공포탄 3발, [[수류탄]] 1발)[* 경계용 탄통]이 담긴 탄약통을 탈취하였다. 상황[[부사관]]인 H [[하사]]가 고가초소 교대 근무에 투입될 근무자에게 [[소총]]을 지급하기 위해 총기보관함을 열었는데 총기보관함을 그대로 열어 놓은 채로 [[담배]]를 피우기 위해 상황실을 비웠으며, 상황병인 L 해병(상병) 역시 상황실을 비우자 그 사이에 김민찬 해병은 상황실에 있는 총기보관함에서 [[병기]]를 탈취하고 간이탄약고의 탄약통도 들고 나온 것이다. 탄약통의 열쇠는 상황실 근무자인 K 해병(일병)이 열쇠를 조끼 윗주머니에 넣어둔다는 것을 김민찬이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걸어 놓은 조끼 주머니에서 쉽게 꺼낼 수 있었다. 김민찬 해병은 정준혁 해병에게 수류탄 1발을 주고 고가초소를 폭파시키라고 지시했다. 오전 11시 40분경, 김민찬 해병은 생활관으로 가서 [[공중전화]] 부스 옆에서 이승렬 해병(상병)에게 총격을 가했다. 총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상황부사관 H하사는 쓰러진 이승렬 해병을 발견해 11시 42분 쯤 [[119]]에 신고했다. 한편 당초 범행을 공모했던 정준혁 해병은 막상 총소리를 듣자 겁이 나서 고가초소 폭파를 실행하지 않고 가해자 김민찬을 피해 도망다녔다. 정준혁 해병은 이승렬 해병이 쓰러져 있음을 목격한 뒤 고가초소 근무자에게 이를 알리고 나서 계속 김민찬 해병을 피해 다녔다. 계속해서 김민찬 해병은 부소초장실 입구에서 부소초장 이승훈 하사(25)에게 소총을 발사했다. [[파일:/image/001/2011/07/05/PYH2011070503120001300_P2.jpg|width=600]] 이어서 그때 6명이 잠자고 있던 제2생활관으로 들어가 좌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잠을 자던 그가 정준혁 해병에게 제일 죽이고 싶다고 말했던 권승혁 해병(일병, 20)의 가슴에 3발을 발사했으며, 그 다음으로 우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자던 박치현 해병(상병, 21)에게 1발을 쏘았다. 이에 권승혁 해병은 바로 즉사했으며 박치현 해병은 즉사하지 않고 중상을 입은 채 살아 있었으나 나중에 도착한 소방서 구급대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호송되던 중에 사망했다. 김민찬 해병은 계속해서 총을 쏘려고 다음 차례인 좌측 두 번째 침상에 누워 있던 권 모 해병(이병) 쪽으로 몸을 돌렸다. 다행히 권 모 해병은 먼저 김민찬 해병이 다른 해병들을 쏠 때의 총소리를 듣고 이미 깨어나 있는 상태였다. 김민찬이 자기 쪽으로 돌아서려는 순간 달려들어서 왼손으로 총부리를 잡아 아래쪽으로 꺾고 오른손으로 개머리판을 잡은 뒤 총을 완전히 빼앗으려고 상호간에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으나, 멜빵이 걸려 있는 데다 김민찬 해병이 완강히 버텨서 결국 총을 빼앗지는 못했다. 대신 그는 가슴을 밀어서 김민찬 해병을 문 밖으로 밀쳐내고 문을 닫은 다음 [[침대]]를 밀어 문을 못 열게 막았다. 전입 온 지 겨우 보름밖에 안 된 권 해병이 목숨 건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동안 평소엔 해병 정신을 그렇게 강조하던 방 안의 나머지 생존 [[선임]] 해병 세 명은 방구석에서 떨고만 있었으며 아무도 그를 도와주려 나서지 않았다. '''권 해병이 총을 뺏지 못한다면 다음으로 총알세례 받을 차례는 바로 자기들일 테니까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같이 달려들어서 총 뺏는 걸 도와주는 게 당연했는데도 방 안에 있던 선임들은 겁에 질려 바짝 얼어서 꼼짝 못하고 뒷구석에서 벌벌 떨고만 있었다.''' 게다가 권 해병이 이미 총부리를 잡고 밑으로 꺾어서 총구가 아래로 향한 상태에서 뺏으려고 몸싸움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김민찬이 전방에 총을 맘대로 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바로 방 안쪽에 있던 '''선임 해병들이 달려들어서 같이 힘을 합하면 어렵지 않게 총을 뺏고 범인을 제압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권 해병과 김민찬 해병이 둘 다 양손으로 총을 잡고 서로 안 뺏기려고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니까, 즉 범인인 김민찬 해병도 총을 안 뺏기려고 잡고 있는 거 외에는 손을 다른 데 쓸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 사이에 다른 해병들이 옆에 다가와서 쉽게 그 총의 [[탄창]]을 빼고 조정간 안전으로 돌려 놓기만 했어도 사실상 게임 끝이어서 그 다음은 맘 놓고 쉽게 총을 뺏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 방 안의 어떤 해병들도 전혀 도와주지 않고 그저 방 구석에서 꼼짝도 못하고 패닉 상태에서 덜덜 떨며 싸움을 보고만 있었다는 건 한심하다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어찌 보면 '''후술하는 빤스런보다도 이 부분이 이 사건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선임 해병들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결국 권 해병은 총을 뺏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범인이 아래쪽으로 총을 발사해서 하반신에 총알을 맞고 만다. 만약 1~2명의 도움만 있었어도 권 해병이 중상을 입는 비극 없이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총을 뺏으려는 권 해병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김민찬 해병 둘 간의 팽팽한 몸싸움이 계속되던 와중에 아래쪽으로 총이 발사되어 권 해병의 하반신에 네 발의 총알이 스쳤다. 다행히 [[뼈]]나 치명적인 부위를 건드리지 않아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한 쪽 [[고환]]에 총상을 입었고 뜨거운 총신을 맨손으로 움켜잡았기 때문에 [[손]]에는 수포가 생기는 [[화상]]을 입었다. 결국 권 해병이 피의자 김민찬 해병을 생활관 밖으로 밀어낸 뒤 문을 닫아 잠그고 나서야 쓰러졌고[*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는 긴박한 싸움 상황에선 [[아드레날린]]이 엄청나게 분비되고 초인적인 생존 본능이 발휘되기 때문에 통증도 그 순간엔 안 느껴지고 자기가 부상을 당했는지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위험한 상황이 지나가고 극도의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야 통증과 출혈 등 몸 상태가 비로소 인식되기 시작한다.] 하체에 피가 철철 나는 것을 깨닫고는 피 흘리는 자신에게 지혈을 해 달라고 주변 선임 해병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임 해병들은 지혈 방법을 모른다며 회피하기만 하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 와중에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스스로 옷을 찢어 지혈'''할 수밖에 없었다.[[http://www.vop.co.kr/A00000413875.html|#]] 사건 후 권 해병의 [[아버지]]는 해병대 가족모임 카페에 올린 글에서, ''''권 해병이 총을 빼앗으려 몸싸움하고 있을 때 뒤에 있던 선임 해병들 중에 한 명만 도와줬어도 총을 빼앗는데 성공했을 테니 권 해병이 총에 맞아 고환이 터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그런 한심한 선임들이 그동안 고참이랍시고 권 해병에게 과자를 토하도록 먹이는 등 괴롭히며 전통이니 뭐니 하고 떠들었다는 게 분통이 터진다'면서 '''해병대 선임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파일:external/image.fmkorea.com/87e98b47c3981aabf6c92fd7fe59e412.jpg|width=600]] >안녕하세요 전해병대2사단 총기사건때동료들을 구한 권혁이병의 아버지 입니다 너무황당한 일이라 어찌해야할지 몰라도움을 구함니다 사건초기에는 사령관도오고 국방장관도오고 여러명이와서 우리혁이행동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국방장관 께서는 큰훈장을 상신하겠다고 약속까지 하고갔습니다 > >그동안 혁이 치료에 집중하느라 찾아온이들의 말만밎고 아무런 조치도 하지몾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전부터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가 다됐으니 8월19일 날짜로 퇴원 해야한다고 합니다 지금혁이상태는 허벅지총알관통한 곳은 살이차오르지못한 상태애서 주변의살이굳어지는일이 생겨 어거지로 봉합수술을 해놓았습니다 봉합수술한곳은 우뮬처럼 폐여있는상태구요 팔에박혔던 총알은다행히 잘제거되었습니다 > >터져버린 고환은 제거한뒤 임시 봉합해놓은상태구요 무었보다 혁이의불안증상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밤에잠을 자지못하고 주변에 누가 지나가기만하면 기겁을하고 놀랍니다 병실문을 갑자기 열면 기절할정도로 놀랍니다 이런혁이를 치료끝났다고 부대 복귀해야 한담니다 부모입장에서 자식을 돌보아야하는데 더치료받고싶으면 부모가 자주가볼수도 없는 포항으로가서 치료를받던지 자비로 민간병원에서 치료를받으라고합니다 너무억울해서 훈장은받을수 있는건지 부대에물어보니 불가하답니다 혁이는 국방장관이 한말을 철떡같이믿고 오로지 그위안으로 정신을버티고 있습니다 그런혁이에게 훈장받지못한다고 차마말을할수가없어 감추고있습니다 차라리 그런말이나말던지 혁이가 모든걸알면 정신상태가 더않좋아질까봐 쉬쉬 하고 있습니다 헌병대에서 조사나올때에도 당연히 유공자가 된다고하더니 그것도 않된다하고 날짜가지나 사람들 머리속에서 잊혀지니 이렇게 잔인할수가 없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아들을 처음보았을때 아들의 첮마디가 아빠 내가 동료들 구했어 한마디 였습니다 >총을맞고 달려들어 동료들을 구하고 피가폭포처럼 흐르는데도 죽어가는 동료 심폐소생술을하고 또다른동료 괜찮으냐고 위로하고 피가너무흘러 정신이 흐려져 살아있는고참에게 지혈을 해달라고 부탁하니 떨면서 꼼작들을 못하고있어서 스스로 옷을걷어 지혈을하고 흐려지는 정신을 가다듬기위해 군가를 부르다 병원으로이송된 이 아이가 국가 유공자가아니면 누가 유공자인지요 >차라리 혁이가 총맞고제압하고 죽어가는 동료심폐술하는동안 꼼작않고 대가리처박고 있던 고참들한테 유공자라하던지 훈련소에서 그부대로간지 15일밖에않된 혁이가 그행동을하는동안 고참들의 행동은 한편으론 이해하면서도 자식이 다친곳을보면 괴씸하기 짝이없습니다 >한명만이라도 도왔으면 혁이고환이터지거나 하사가 죽는일은 없었을텐데 생각할수록 안타깝습니다 >그런고참들이 우리아이에게 토하도록 과자를먹이고 전통이니뭐니 떠들었다는게 분통이터집니다 >여러분 도와주세요 이아이를 군에 다시데려가서 또다른 관심사병을 만들려는건지부모로서는 불안하기짝이없습니다 정말우리혁이가 군에서 작업하다 손가락상처난정도의 사병들과 같은 처분을받아야 하는건지 억울합니다 도와주세요 아는게 없어 하소연할곳이 이곳뿐이라 여러분께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부모인제가 어찌해야하는지 고견좀부탁합니다 >---- >- 권 해병(이병)의 아버지가 다음카페에 올린 글 그 부대 해병들 중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군인다웠던 사람이 실무(자대) 배치받은 지 보름밖에 안 돼서 가장 해병대 물이 덜 든 권 해병이었다는 게 해병대의 씁쓸한 현실이기도 하다. 이후 김민찬 해병은 생활관 바로 옆의 창고로 이동해서 공모자인 정준혁 해병을 만났다. 정준혁 해병이 약속과는 달리 고가초소를 폭파시키지 못한 것을 안 김민찬 해병은 동반[[자폭]]하기 위해 정준혁 해병으로부터 수류탄을 빼앗아 터트렸고 다리, 등, 얼굴 등에 파편상을 입고 쓰러졌으나 생명엔 지장이 없었다. 정준혁 해병은 곧바로 달아났으며, 수류탄 파편에 의한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김민찬 해병은 이후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낮 12시 15분, 인천강화소방서 길상구급대 임동문 [[소방교]] 등 6명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부상자들을 이송했다. 한편 총격이 일어난 2생활관이 아닌 다른 생활관들에서 쉬고 있던 해병들은 총소리를 듣고는 놀란 나머지 생활관 밖으로 뛰쳐나와서 부대 밖으로 도망을 치고 말았다. 부대 인근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속옷]][* 정확히 말하면 속옷은 아니고 해병대 하계 체육복의 하의로 입는 짧은 트렁크식 숏팬츠(해병대에서는 일명 '각개빤쓰'라고 부름)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해병대 출신들도 꽤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굴욕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것만 입고 감히 부대를 이탈해 민가로 도망친 건 사실이니까.]만 입은 해병들이 소초에서 뛰쳐나와 부대 앞 해안도로와 민가 쪽 등 여기 저기로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고 한다. 이 상황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강화도 해병대 동료 총격 사건#부대원들의 부대이탈 (일명 '빤스런' 사건)|부대원들의 부대이탈]] 항목에서 서술. 마초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해병대는 이 '[[빤스런]]' 사건으로 인해 큰 조롱과 굴욕을 겪었는데, 심지어 2022년에는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4954519?sid=102|"바리깡으로 음모 밀고, 유두에 빨래집게"]] 등 성고문까지 발생해 더욱 이미지가 추락했다. 특히 가해 병사 중 한 병장은 '''며칠 뒤 전역이라며 또다른 의미의 빤스런'''을 꿈꿨다. [[모병제]]는 자신의 직장인 만큼 선후임과 계속 얼굴 볼 사이이고 진급을 위해 내부의 평판도 신경써야 하고 사건이 터지면 짤릴 위험도 있어 후임을 괴롭혀도 적당히 군기 잡는 선에서 괴롭히지만, 어차피 전역일만 채우면 '빤스런'하고 두번 다시 얼굴 볼 일 없는 [[징병제]]에서는 '[[잃을 게 없다|잃을 게 없는]]' 선임들의 통제가 안 되는 가혹행위가 많이 발생한다. 이 사건의 유일한 '영웅'으로서 그나마도 해병대의 자존심을 지킨 용맹한 '권 모 해병(이병)' 역시 [[식고문|토할 때까지 과자 먹이기]] 등 막장 가혹행위에 시달렸는데 이 사건의 가해자가 동료에게 '전우애'가 아닌 살의를 품게 된 근본 원인도 부대 내의 그릇된 가혹행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